`미친개` 교사가 `엎드려뻗쳐` 교사에게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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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미디어다음]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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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개' 교사가 '엎드려뻗쳐' 교사에게 드립니다
오마이뉴스 | 입력 2011.06.23 20:11 |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 대전
[오마이뉴스 서부원 기자]
우선 밝혀둘 게 있다. 필자는 교직 경력이 14년차에 접어드는 40대 초반의 지방 고등학교 교사이고, 초등학교 다니는 두 아이의 아빠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 초임 시절 무던히도 매를 들어 당시 제자들에게 '미친개'라는 별명까지 얻어들어야 했던, 이른바 체벌을 밥 먹듯이 한 교사였다.
이렇게 말하기 좀 뭣하긴 하지만, 교과서보다 매를 먼저 챙겨 들었던 그때가 솔직히 중년에 접어든 지금보다 훨씬 더 '열정적'이었다. 아이들마다의 이름과 성격, 가정환경과 성적 추이 등을 줄줄 꿰고 있었고, 그들과 별반 나이 차가 나지 않는 또래라는 생각에 수시로 상담할 만큼 세심하고 자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랬기에 스스로 체벌을 교육에 대한 열정이자 아이들을 향한 사랑으로 확신했고, 외려 매를 드는 이유를 몰라주는 아이들이 그저 야속하기만 했다. '맞는 아이보다 때리는 선생님의 마음이 더 아프다'는 걸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고, 언젠가는 아이들이 교사의 마음을 이해해 줄 때가 오리라 믿고 또 믿었다.
그런데 어느새 시대정신이 달라졌고, 교육 내용도 환경도 시나브로 변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달라졌다. 굳이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면, 교육방식에 대한 교사들의 획일적이고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 아닐까 자성해보게 된다. 변화를 외면한 채 교사의 옛 방식대로의 열정은 요즘 아이들에게 자칫 '사랑'이 아닌 '폭력'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점심시간, 급식소에서 생긴 일
엊그제 겪은 일이다. 사실 이와 유사한 일들이 심심찮게 벌어지기에 딱히 새로울 것도 없고 크게 놀랄 일도 아니지만, 교사로서 십여 년 전과 지금의 내 '반응'을 스스로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여서 이곳에 짤막하게 소개한다. 독자가 교사라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학부모의 입장이라면 지금의 학교 현실을 짐작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여느 때처럼 급식소 내에서 생활지도를 하고 있었다. 교사들끼리 연중 순번을 정해 근무하는데, 점심시간 동안 급식소 내를 순회하며 새치기를 예방하고, 편식하지 않도록 식습관 지도를 하며, 음식을 남기지 않도록 잔반통 관리를 하는 일이다. 아이들의 올바른 생활습관을 배양한다는 차원에서 어쩌면 학습지도 못지않게 중요한 업무다.
요즘 아이들의 그릇된 편식습관이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급식지도를 하다 보면 그로 인해 화병이 다 날 지경이다. 김치나 나물은 손도 안 대고, 생선요리는 젓가락 한 번 대지 않은 상태에서 고스란히 잔반통에 버려지기 일쑤다. 불고기나 돈가스라도 나올라치면 듬뿍 받아다가 아예 밥을 대신해 먹는 게 요즘 아이들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잔반통 없는 날'을 운영하는데, 그날이 되면 단속을 피해 식탁 아래에 몰래 잔반을 버려두고 가는 얌체 같은 아이들도 많다. 올해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교육청 차원에서 야심차게 시작한 '채식의 날' 때는 아예 급식소로 오지 않는 아이들도 더러 있다. 어릴 적부터 철저히 육식과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경우다.
학교에서는 교내 방송과 수업 시간을 통해 온갖 교육 자료를 동원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자고, 편식 습관이 해롭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런 그들에게 점심시간 동안 잠깐 설득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싶어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차라리 그들과 같은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며 묵묵히 '모범'을 보여주는 게 백 마디 말보다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날도 잔반통 앞에 서 있었다. 여느 때처럼 왜 밥을 남겼냐고, 왜 나물은 손도 대지 않았냐고 조심스럽게 타일렀고, 아이들 역시 늘 그래왔던 것처럼 다음엔 다 먹겠다는 '빈말'을 건네며 잔반통에 식판을 털었다. 기실 내일도 모레도 이곳 잔반통 앞에서 똑같은 대화를 나눌 아이들이다.
교사와 학생 사이 '관계' 끊어지면 어떤 교육행위도 무의미
바로 그때, 한 녀석이 밥이고 반찬이고 거의 손대지 않은 식판을 들고 잔반통 앞에 서 있었다. 도저히 못 먹을 것 같아 버리려 한다는 거다. 먹지 않으려면 애초에 받지를 말지, 아까운 음식을 몽땅 버려서야 되겠느냐며 꾸짖었다. 만약 음식이 아닌, 돈이라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겠냐며 '교과서적으로' 타이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랬더니 불쾌하다는 듯 노려보며 이렇게 대꾸했다.
"아 짜증나! 맛도 없게 요리해놓고 어떻게 먹으라는 거예요? 선생님, 전 집에서도 맛없으면 아예 밥 안 먹어요."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아무리 직접 가르치지 않는 학년의 아이라지만, 아이가 교사에게 건넨 말이라고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례한 태도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찌 된 영문인지 입에서는 '비굴한' 답변이 나왔다. 가슴은 터질 듯했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웬일인지 입은 따로 논 것이다. 교사로서 지금껏 단 한 번도 스스로 겪어보지 못한, 어쨌든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그랬구나. 영양사님과 조리사님께 찾아가 음식 맛에 더욱 신경 써달라고 부탁하마. 그런데 맛없는 음식이 몸에 좋다고들 하잖니. 내가 보증하건대, 매점에서 파는 빵보다, 맛내려고 조미료 듬뿍 넣은 음식보다도 훨씬 네 몸에 좋은 것이니 보약이다 생각하고 먹을 순 없겠니? 더구나 음식물 쓰레기 비용을 줄이면 더 좋은 반찬이 차려질 수 있지 않을까?"
그 아이는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노력해 보겠노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그렇다고 당장 내일부터 그의 그릇된 식습관과 생활태도가 다잡아지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교육이 어디 그렇게 단시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일인가. 교사와 학생 사이에 인간적인 관계만 유지될 수 있다면, 가랑비에 옷 젖듯 언젠가는 변할 수 있다는 확신이 교육 아니던가.
만약 초임 시절 때처럼 화를 못 참고 그를 불러내 고함을 치고 매질을 해댔다면? 바로 앞에서는 잘못했다고 무릎 꿇을지언정 그와의 인간적인 관계는 영영 끝났을 거다. 요즘 세태마냥 그가 경찰에 신고한다고 치자. 체벌의 정도를 두고 적잖은 논쟁이 벌어지고 급기야 여론과 법의 심판을 받았겠지만, 어쨌든 인간적인 관계는 깨질 수밖에 없다.
교육은 마음의 일일진대 교사와 학생 사이에 '관계'가 끊어지면 더 이상 그 어떤 교육행위도 무의미하다. 기실 학교가, 또 우리 사회가 지금껏 체벌에 비교적 관대했던 건, 그것이 어떻든 아이들의 잘못된 습관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 중 체벌을 당하고도 교사와 인간적인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는 경우, 단언컨대, 없다.
구태의연한 표현 방식에 대한 경고 아닐까
최근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5초 '엎드려뻗쳐' 체벌 논란을 지켜보며 같은 교사로서 교사 편을 들 수 없는 이유다. 교총에서는 '교육의 본질을 무너뜨리고 교사의 열정을 꺾었다'고 발끈했지만, 진정 교육의 의미를 놓고 보면 징계가 지나쳤는지 여부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백보 양보해서 체벌로 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다 해도,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그러한 교육방식이 되레 교육의 본질을 무너뜨린다고 해야 옳다. 아울러, 이번 징계가 해당 교사의 교육적 열정을 문제 삼은 게 아니라, 단지 그 열정의 구태의연한 표현 방식에 경고를 내린 것일 뿐이다.
일면식도 없지만,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동료이자 선배 교사로서 정중히 조언한다. 징계를 받아 불이익을 받고 자존심에 생채기가 난 것보다 먼저 가슴 아파해야 할 게 있다. 명색이 교사로서 그 아이와 사제지간의 돈독한 교감은커녕 더 이상 인간적인 관계조차 유지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해야 한다.
도교육청과 소청심사위원회에서 '옷깃을 잡고 조금 흔들었는지', '목덜미를 잡고 머리를 때렸는지'라는 두 주장의 진위를 가려본다지만, 결론이 어떻게 나든 적어도 당신은 '교사로서 그 아이를 사랑해서 벌을 주었다'고 말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체벌에 사랑이 빠지면 감정이 실리기 마련이라는데, 아이와 학부모는 그것을 문제 삼은 것 아니겠는가.
솔직히 같은 교사로서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어 그 아이를 두둔하고 싶은 마음 추호도 없다. 다만 진정 교육적 열정을 지닌 교사라면, 그런 아이들조차도 보듬어 안으라고 소명을 받은 사람들 아닌가. 끝으로, 철든 이후 교사로서 좌우명처럼 하루하루 새기며 마음을 추스르는 글귀가 있어 소개한다. 이에 공감한다면 체벌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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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기 좀 뭣하긴 하지만, 교과서보다 매를 먼저 챙겨 들었던 그때가 솔직히 중년에 접어든 지금보다 훨씬 더 '열정적'이었다. 아이들마다의 이름과 성격, 가정환경과 성적 추이 등을 줄줄 꿰고 있었고, 그들과 별반 나이 차가 나지 않는 또래라는 생각에 수시로 상담할 만큼 세심하고 자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랬기에 스스로 체벌을 교육에 대한 열정이자 아이들을 향한 사랑으로 확신했고, 외려 매를 드는 이유를 몰라주는 아이들이 그저 야속하기만 했다. '맞는 아이보다 때리는 선생님의 마음이 더 아프다'는 걸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고, 언젠가는 아이들이 교사의 마음을 이해해 줄 때가 오리라 믿고 또 믿었다.
그런데 어느새 시대정신이 달라졌고, 교육 내용도 환경도 시나브로 변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달라졌다. 굳이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면, 교육방식에 대한 교사들의 획일적이고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 아닐까 자성해보게 된다. 변화를 외면한 채 교사의 옛 방식대로의 열정은 요즘 아이들에게 자칫 '사랑'이 아닌 '폭력'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점심시간, 급식소에서 생긴 일
엊그제 겪은 일이다. 사실 이와 유사한 일들이 심심찮게 벌어지기에 딱히 새로울 것도 없고 크게 놀랄 일도 아니지만, 교사로서 십여 년 전과 지금의 내 '반응'을 스스로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여서 이곳에 짤막하게 소개한다. 독자가 교사라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학부모의 입장이라면 지금의 학교 현실을 짐작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여느 때처럼 급식소 내에서 생활지도를 하고 있었다. 교사들끼리 연중 순번을 정해 근무하는데, 점심시간 동안 급식소 내를 순회하며 새치기를 예방하고, 편식하지 않도록 식습관 지도를 하며, 음식을 남기지 않도록 잔반통 관리를 하는 일이다. 아이들의 올바른 생활습관을 배양한다는 차원에서 어쩌면 학습지도 못지않게 중요한 업무다.
요즘 아이들의 그릇된 편식습관이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급식지도를 하다 보면 그로 인해 화병이 다 날 지경이다. 김치나 나물은 손도 안 대고, 생선요리는 젓가락 한 번 대지 않은 상태에서 고스란히 잔반통에 버려지기 일쑤다. 불고기나 돈가스라도 나올라치면 듬뿍 받아다가 아예 밥을 대신해 먹는 게 요즘 아이들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잔반통 없는 날'을 운영하는데, 그날이 되면 단속을 피해 식탁 아래에 몰래 잔반을 버려두고 가는 얌체 같은 아이들도 많다. 올해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교육청 차원에서 야심차게 시작한 '채식의 날' 때는 아예 급식소로 오지 않는 아이들도 더러 있다. 어릴 적부터 철저히 육식과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경우다.
학교에서는 교내 방송과 수업 시간을 통해 온갖 교육 자료를 동원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자고, 편식 습관이 해롭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런 그들에게 점심시간 동안 잠깐 설득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싶어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차라리 그들과 같은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며 묵묵히 '모범'을 보여주는 게 백 마디 말보다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날도 잔반통 앞에 서 있었다. 여느 때처럼 왜 밥을 남겼냐고, 왜 나물은 손도 대지 않았냐고 조심스럽게 타일렀고, 아이들 역시 늘 그래왔던 것처럼 다음엔 다 먹겠다는 '빈말'을 건네며 잔반통에 식판을 털었다. 기실 내일도 모레도 이곳 잔반통 앞에서 똑같은 대화를 나눌 아이들이다.
교사와 학생 사이 '관계' 끊어지면 어떤 교육행위도 무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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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짜증나! 맛도 없게 요리해놓고 어떻게 먹으라는 거예요? 선생님, 전 집에서도 맛없으면 아예 밥 안 먹어요."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아무리 직접 가르치지 않는 학년의 아이라지만, 아이가 교사에게 건넨 말이라고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례한 태도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찌 된 영문인지 입에서는 '비굴한' 답변이 나왔다. 가슴은 터질 듯했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웬일인지 입은 따로 논 것이다. 교사로서 지금껏 단 한 번도 스스로 겪어보지 못한, 어쨌든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그랬구나. 영양사님과 조리사님께 찾아가 음식 맛에 더욱 신경 써달라고 부탁하마. 그런데 맛없는 음식이 몸에 좋다고들 하잖니. 내가 보증하건대, 매점에서 파는 빵보다, 맛내려고 조미료 듬뿍 넣은 음식보다도 훨씬 네 몸에 좋은 것이니 보약이다 생각하고 먹을 순 없겠니? 더구나 음식물 쓰레기 비용을 줄이면 더 좋은 반찬이 차려질 수 있지 않을까?"
그 아이는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노력해 보겠노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그렇다고 당장 내일부터 그의 그릇된 식습관과 생활태도가 다잡아지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교육이 어디 그렇게 단시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일인가. 교사와 학생 사이에 인간적인 관계만 유지될 수 있다면, 가랑비에 옷 젖듯 언젠가는 변할 수 있다는 확신이 교육 아니던가.
만약 초임 시절 때처럼 화를 못 참고 그를 불러내 고함을 치고 매질을 해댔다면? 바로 앞에서는 잘못했다고 무릎 꿇을지언정 그와의 인간적인 관계는 영영 끝났을 거다. 요즘 세태마냥 그가 경찰에 신고한다고 치자. 체벌의 정도를 두고 적잖은 논쟁이 벌어지고 급기야 여론과 법의 심판을 받았겠지만, 어쨌든 인간적인 관계는 깨질 수밖에 없다.
교육은 마음의 일일진대 교사와 학생 사이에 '관계'가 끊어지면 더 이상 그 어떤 교육행위도 무의미하다. 기실 학교가, 또 우리 사회가 지금껏 체벌에 비교적 관대했던 건, 그것이 어떻든 아이들의 잘못된 습관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 중 체벌을 당하고도 교사와 인간적인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는 경우, 단언컨대, 없다.
구태의연한 표현 방식에 대한 경고 아닐까
최근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5초 '엎드려뻗쳐' 체벌 논란을 지켜보며 같은 교사로서 교사 편을 들 수 없는 이유다. 교총에서는 '교육의 본질을 무너뜨리고 교사의 열정을 꺾었다'고 발끈했지만, 진정 교육의 의미를 놓고 보면 징계가 지나쳤는지 여부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백보 양보해서 체벌로 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다 해도,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그러한 교육방식이 되레 교육의 본질을 무너뜨린다고 해야 옳다. 아울러, 이번 징계가 해당 교사의 교육적 열정을 문제 삼은 게 아니라, 단지 그 열정의 구태의연한 표현 방식에 경고를 내린 것일 뿐이다.
일면식도 없지만,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동료이자 선배 교사로서 정중히 조언한다. 징계를 받아 불이익을 받고 자존심에 생채기가 난 것보다 먼저 가슴 아파해야 할 게 있다. 명색이 교사로서 그 아이와 사제지간의 돈독한 교감은커녕 더 이상 인간적인 관계조차 유지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해야 한다.
도교육청과 소청심사위원회에서 '옷깃을 잡고 조금 흔들었는지', '목덜미를 잡고 머리를 때렸는지'라는 두 주장의 진위를 가려본다지만, 결론이 어떻게 나든 적어도 당신은 '교사로서 그 아이를 사랑해서 벌을 주었다'고 말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체벌에 사랑이 빠지면 감정이 실리기 마련이라는데, 아이와 학부모는 그것을 문제 삼은 것 아니겠는가.
솔직히 같은 교사로서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어 그 아이를 두둔하고 싶은 마음 추호도 없다. 다만 진정 교육적 열정을 지닌 교사라면, 그런 아이들조차도 보듬어 안으라고 소명을 받은 사람들 아닌가. 끝으로, 철든 이후 교사로서 좌우명처럼 하루하루 새기며 마음을 추스르는 글귀가 있어 소개한다. 이에 공감한다면 체벌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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