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교육에서의 탐구 활동과 창의력 향상
경기과학 118호(2005/12) - 이덕환(서강대, 화학과)
탐구 활동을 통한 창의력 향상이 과학 교육의 핵심 목표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모든 학생에게 탐구 활동을 요구하고, 창의력을 향상시켜 주는 교육 목표가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탐구 활동이 창의력 향상의 유용한 교육 방법인가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하다.
I. 들어가기
어렵게 마련된 제7차 교육과정이 벌써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적어도 과학의 경우에는 그렇다. 중등학교 과학 교육에 대해서 직접적인 의견을 내놓지 않았던 과학 분야의 전문 학술 단체들이 발벗고 나설 정도다. 크게 줄어 들어버린 수업 시수와 학생들이 과학을 외면하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이 현재 겉으로 드러난 새 교육과정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의 과학 교육 철학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다.
제7차 과학 교과 교육과정은 "자연 현상과 사물에 대하여 흥미와 호기심을 가지고, 과학의 지식 체계를 이해하며, 탐구 방법을 습득하여 올바른 자연관을 갖도록 한다"는 총괄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 총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지적, 탐구과정, 정의적, 과학 기술 사회적 측면에서의 세부 목표도 제시하고 있다. 과학의 '실용성'을 특히 강조하고, 학문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사회와 환경에 대한 관심과 함께 과학적 소양을 중시하는 인간 중심의 교육을 내세우고 있다. 과거 학문 중심의 과학 교육이 학생의 사회상, 개인적인 관심사, 실제적인 적용을 무시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충분한 동기를 부여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화려하게 내세운 총괄 목표와 세부 목표가 아니다. 문제는 실제로 시행된 제7차 과학 교과 교육과정이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실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분명한 이유도 없이 과학 교과의 수업 시수가 크게 줄어버려서 과학을 중심으로 하는 지식 기반 사회를 대비한 교육과정이라고 볼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결국 '창의력 향상을 위해서'라는 옹색한 변명을 앞세워 학습 내용을 30%나 줄일 수밖에 없었다. 학생과 학교의 현실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학생들의 수업 능력을 고려해주겠다는 선택권은 입시에 시달리고 있는 학생들을 '쉬운 과목'으로 몰아넣어 버렸다. 교사와 시설이 부족한 학교에서 수준별 교육은 그림의 떡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일부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개설해주지 못하는 학교까지 생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제7차 과학 교과 교육과정에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숨겨져 있다. 탐구 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창의력을 향상시키겠다는 교육 목표가 그것이다. 자연에 숨겨진 과학적 신비를 찾아내어 체계적으로 정리한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탐구 활동이 그럴듯하게 보일 수도 있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21세기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창의력을 향상시켜 주겠다는 목표가 나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중등학교에서 과학을 배우고 있는 '모든' 학생들이 과학자에게나 필요한 탐구 능력을 갖추어야 하고, 정말 그런 교육을 통해 창의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탐구 활동을 통한 교육의 효율성도 문제이지만, 그런 목표가 자칫하면 많은 학생들에게 과학을 외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II. 과학 교육의 사회적 의미
과학 교과의 제7차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논의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중등학교에서의 과학 교육을 필요로 하는 이유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과학 교과의 수업 시수를 줄이고, 창의력을 강조하는 것이 과학 교육을 요구하는 사회의 요구에 맞는 것인가를 확인해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1. 과학기술자 양성을 위한 과학 교육
우리 학생들이 치열한 기술 경쟁의 지식 기반 사회를 살아가게 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치열한 기술 경쟁을 이겨낼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생존을 위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과제이고, 그런 경쟁력은 과학을 핵심으로 하는 지식 기반 사회를 이룩해야만 얻어질 수 있다. 결국 과학은 우리 사회의 경제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임에 틀림이 없는 셈이다. 천연 자원도 충분하지 못한 우리의 경우에 과학을 이용한 경제력 확보는 더욱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과학은 경제 발전의 효율적인 수단으로만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 과학이 경제 발전의 수단으로만 유용하다면 중등학교에서의 과학 교육도 그에 맞도록 이루어져야만 한다. 우선 과학 지식을 통해서 경제 발전에 직접 기여할 수 있는 과학기술자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의 산업 구조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과거 우리의 주력 산업이었던 중공업이나 화학 산업과 같은 소위 굴뚝 산업에서는 다양한 수준의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기술 개발을 담당한 전문 과학기술자들도 필요했고, 산업 현장에서 직접 생산 업무를 담당하는 기능 인력도 많이 필요했다. 그런 인력 모두가 상당한 과학 지식을 갖추어야만 했다. 그러나 최근에 등장하고 있는 생명공학(BT)을 비롯한 첨단 산업의 경우에는 사정이 크게 다르다. 첨단 산업은 고도로 훈련된 소수의 전문 인력만으로 가동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고용 창출 효과는 매우 낮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문 과학기술 인력의 수는 크게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경제력 확보에 기여할 수 있는 소수의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 모든 학생들에게 어렵고 재미없는 과학을 가르치는 일은 엄청난 사회적 낭비가 될 뿐이다. 오히려 과학 기술계로 진출할 학생들만을 선별해서 집중 교육을 시키는 것이 사회적으로 훨씬 더 현명하고 효율적인 방안이다. 과학이 배우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실험 교육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과학기술자가 될 생각이 없는 학생들에게는 최소한의 시간과 비용으로 과학을 소개하는 교양 교육으로 충분하다. 실제로 예술과 체육 분야에서는 오래 전부터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 일반 학생들의 교육이 철저하게 구분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최소한의 교양 교육만 제공했을 뿐이다. 만약 과학의 경제적 유용성만을 활용해야 한다면 예술이나 체육의 경우처럼 소수의 엘리트를 육성하는 교육과 일반 교양 교육을 분명하게 분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뜻이다.
2. 민주시민 양성을 위한 과학 교육
우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의 중등학교에서 상당한 수준의 과학을 교육하고 있는 것은 과학 교육이 과학기술자의 양성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현대 사회에서 과학은 사회의 경제력 확보의 수단 이외에도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본래 고대의 과학은 주술사, 추장, 왕으로 이어지는 절대 권력의 핵심이었다. 계절과 날씨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과학 지식을 가진 사람은 아무나 흉내낼 수도 없었고, 함부로 무시할 수도 없었다. 자연의 변화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필요로 했던 농경 사회에서는 더욱 그랬다. 결국 남이 흉내낼 수 없는 과학 지식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은 사회의 지배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런 전통은 극히 최근까지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던 천문학의 경우에서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서양과는 달리 동양에서 중국이 오랜 세월 동안 주변 민족들에게까지 절대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천문 관측 기술을 철저하게 관리했던 덕분이었다.
현대적 의미의 민주주의가 출현하게 될 바탕이 만들어진 것은 중세의 암흑기가 지나면서 근대 과학이 싹트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면서부터 절대 권력의 위력을 급격하게 쇠퇴하게 되었고, 19세기에 이르면서 본격적인 민주화의 물결이 세계를 휩쓸게 되었다. 현대 과학이 널리 확산되지 못했더라면 오늘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개인의 자유와 평등, 인권과 같은 개념이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자연의 정체와 변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현대의 과학은 민주 시민의 필수 상식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충분한 과학 상식과 과학적 사고방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제대로 지킬 수 있는 민주 시민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과학은 사회적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한 민주 사회를 원만하게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특히 오늘날처럼 고도로 발달한 기술 문명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 사회에서는 쉽게 이해할 수도 없고, 사회적 또는 환경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기술의 활용에 대한 원만한 사회적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절대 권력이 지배하던 과거에는 권력자의 선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민주화된 사회에서는 정확한 과학 지식과 합리적인 판단력을 가진 시민들 각자의 주관적인 의견을 바탕으로 하는 원만한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최근에 우리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사회적 갈등의 얼마나 많은 사회적 낭비를 초래하고 있는가를 고려하면 과학 교육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
또한 과학은 이윤 추구를 위해서라면 상당한 자유가 허용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비주의를 가장한 잘못된 상술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물론 모두가 지켜야 할 법과 윤리가 있지만 과학을 가장한 잘못된 방법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경우가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아무리 선진화된 사회라고 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이다. 신비주의를 가장한 엉터리 상술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것은 결국 개인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 충분한 과학 지식과 과학적 사고방식을 갖추지 못하면 엉터리 상술에 속아넘어가서 아까운 재산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소중한 생명까지 위협받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과학은 현대를 살아가는 바람직한 자연관과 세계관을 갖추기 위한 수단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자연과 인간의 정체에 대한 정확한 과학적 이해가 없으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이 불가능하다. 자연과 생태계, 나아가서 우주에 대한 막연한 동경(憧憬)만으로는 바람직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 또한 과학 지식이 충분하지 못하면 음악이나 미술을 비롯한 예술을 충분히 즐기는 능력도 갖지 못하게 된다.
결국 오늘날의 과학은 단순히 경제력 확보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현대 민주 시민으로서의 갖추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인성(人性)의 요소다. 정확한 과학 지식을 갖추지 못하면 자연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도 없고, 그런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의 삶은 물론이고 지구상의 생명을 존중해야 하는 진짜 이유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우리의 자유와 평등과 창의성도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우리가 중등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에게 어려운 과학을 많은 노력과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애써 가르쳐야 하는 진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III. 과학 교육에서의 탐구 활동
우리 과학 교육에서 '탐구 활동'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1973년부터 시행된 제3차 교육과정부터였다. 그동안의 생활 중심의 과학 교육에서 벗어나서 탐구 중심, 학문 중심의 과학 교육을 추구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1960년대부터 미국에서 시작된 탐구 활동 중심의 교육을 뒤늦게 받아들인 것이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탐구 방법을 습득'하는 것이 과학 교과의 총괄 목표가 되었다. 과학 교육에서 탐구 활동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본격적인 탐구 활동을 위한 준비는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이다. 탐구 활동에 꼭 필요한 실험실도 최근에야 조금씩 갖추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고, 아직도 해소되지 않고 있는 과밀 학급도 정상적인 탐구 활동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교사 양성이나 재교육 프로그램에서조차 탐구 활동에 필요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결국 교육과정을 개편할 때마다 탐구 활동을 더욱 강조해왔지만, 정작 학생들이 효율적인 탐구 활동을 통해 학습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환경을 마련하는 일은 소홀히 했던 셈이다. 탐구 활동의 취지가 아무리 좋고, 다른 나라에서 성공적으로 시행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충분한 환경을 마련하지 못했다면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는 과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탐구의 특성에 대해서 먼저 살펴 본 후에 현재 우리 중등 과학 교육에서 강조되고 있는 탐구 활동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1. 과학에서의 탐구
자연의 정체와 변화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자연과학적 연구와 과학적 지식을 우리의 생활과 산업에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한 응용과학적 또는 공학적 연구의 모든 과정을 흔히 탐구(inquiry)라고 부른다. 이미 확인된 지식을 논리적으로 활용해서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찾아내는 과정인 셈이다. 그런 과학적 탐구에서 특별히 강조되는 것이 창의성과 논리성이다.
가. 탐구의 일반적인 과정
일반적으로 탐구의 과정은 문제 인식, 가설 설정, 실험 설계 및 수행, 문제 해결의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탐구의 첫 단계인 문제 인식은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되는 자연적 또는 인공적 환경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되고, 반복적으로 재현되는 현상에서 시작된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만에 의해서 관찰되거나, 한 번 관찰된 후에는 다시 반복되지 않는 현상은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종교적인 현시(現示) 현상이나 미확인비행물체(UFO)와 같은 것이 그런 경우가 된다. 그런 현상의 설명은 종교적 신념이나 신비주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현대 과학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다.
성공적인 탐구를 위한 가설은 이미 보편적이고 객관적으로 확인되어 널리 알려져 있는 과학적 지식과 자료를 바탕으로 철저한 논리적 틀을 갖추어야 한다. 과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설명이나 종교적 교리를 근거로 하거나, 논리적 비약이 있는 가설은 과학적 탐구에 활용할 수 없다. 또한 과학적 가설은 통제된 실험을 통해 그 진위를 확인할 수 있어야만 한다. 단순한 추론이나 일방적인 주장은 과학적 가설이 될 수 없다.
가설을 확인하기 위한 실험에서는 우선 실험의 환경을 결정하는 통제 변인과 실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독립 변인, 그리고 그런 변인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종속 변인을 파악해야 한다. 그런 변인들 사이의 관계를 알아내기 위해서 이미 알려져 있는 모든 과학 지식과 수학적 도구를 활용해야 한다. 실제 실험에서는 독립 변인을 변화시키면서 얻어지는 종속 변인들을 정확하게 관찰하거나 측정해서 의미가 있는 경향이나 규칙성을 찾아내야 한다.
탐구의 마지막 과정은 실험에서 확인된 경향이나 규칙성이 설정한 가설을 정당화시키기에 충분한가를 논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런 판단은 충분히 객관적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어야만 한다. 실험 결과에 대한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으로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탐구는 실패로 끝나버리게 된다.
만약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의 결과가 인식한 문제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면 가설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가설을 설정해서 실험을 반복해야만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진행되는 탐구를 흔히 '모형 개발' 또는 '가설 연역적 탐구'라고 부르며, 새로운 과학 지식을 개발하는 가장 중요한 탐구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과학의 핵심이 되고 있는 고도로 추상적인 개념이나 법칙들은 대부분 이러한 방법으로 개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개발된 개념이나 법칙들은 관련된 다른 현상을 설명하는 유용한 도구로 활용된다.
나. 모형 개발의 보기
본격적인 모형 개발의 과정을 이해하기에 가장 적절한 보기는 중등학교 화학에서 기체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소개하는 '기체 운동론'이라고 할 수 있다. 기체 운동론은 경험적으로 확인된 보일 법칙(p 1/V), 샤를 법칙(p T), 아보가드로 법칙(p n)을 직접 확인할 수 없는 분자의 움직임으로 설명하는 전형적인 '과학적 모형'이다.
이 경우에 해결하려는 문제는 기체의 압력이 부피에 반비례하고, 온도에 비례하고, 기체의 양에 비례한다는 관찰 결과이다. 실험을 통해 관찰된 기체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기체는 많은 수의 작은 입자(분자)로 구성되어 있고, 기체 입자는 등속의 직진 운동을 하며,
기체 입자들은 서로 탄성 충돌을 한다는 가설을 도입한다. 그런 가설을 근거로 기체 입자들의 운동을 지배하는 뉴턴의 운동 법칙과 탄성 운동의 특성, 그리고 많은 수의 입자들에 적용되는 통계학적 도구를 적용해서 기체 입자들의 속도 또는 운동 에너지 분포를 나타내는 표현식을 얻어야 한다.
기체 운동론의 실험적 확인은 이론적으로 얻어진 기체 입자들의 속도 분포를 속도 분포 측정 장치를 이용해서 직접 확인해야 한다. 속도 분포의 표현식을 처음 인식했던 문제와는 논리적으로 독립적인 다른 현상에 적용해서 확인하는 것도 가설을 확인하는 실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중등학교에서 소개되는 맥스웰의 속도 분포 또는 볼츠만의 운동 에너지 분포가 그렇게 얻어진 것이다.
기체 운동론이 대부분의 기체 상태를 설명하는 데에는 매우 성공적이다. 그러나 온도가 충분히 낮거나, 압력이 충분히 높은 경우에는 기체 운동론에서 얻어지는 이상기체 상태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 경우에는 기체 운동론의 가설에 기체 입자의 크기가 유한하고, 기체 입자들 사이에 약한 인력(引力)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수 있도록 수정해야 한다.
다. 변형된 탐구 과정
그러나 과학에서의 탐구가 모두 '가설 연역적 탐구'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과학 연구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탐구가 모두 새로운 과학 지식 또는 개념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의 개념이나 법칙은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제한된 환경에서만 적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에서 설명한 기체 운동론의 경우에도 온도, 압력, 부피, 기체의 양이 액화가 일어나는 조건에 가까워지게 되면 정확하게 맞지 않게 된다. 온도가 충분히 낮거나, 압력이 충분히 높은 경우에는 이상기체 상태식 대신 반데르발스 상태식이 적용되게 된다. 가장 단순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온도'와 '압력'의 개념도 관찰하고 있는 시스템(계)을 구성하는 입자의 수가 충분히 많은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다. 온도와 압력이 입자의 운동 에너지 분포의 특성을 나타내는 통계적 대푯값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중등학교 과학 교육에서 다루는 가장 중요한 법칙이라고 할 수 있는 뉴턴의 운동 법칙도 관찰 대상이 충분히 크고, 관찰자의 움직임이 충분히 느린 경우에만 성립되는 한계 법칙이다. 관찰 대상이 매우 작을 경우에는 양자 역학을 적용해야 하고, 관찰자의 움직임이 충분히 빠르게 되면 상대성 이론을 적용해야 한다.
한계 법칙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과학적 개념이나 법칙의 적용 한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현대 과학의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한계를 알아내는 탐구의 경우에는 탐구자가 처음부터 탐구의 결과를 알고 있는 '연역적 탐구'에 더 가깝게 된다. 실험에서 관찰된 현상에 어떤 한계 법칙이 적용하는가를 알아내는 '귀납적 탐구'도 많이 활용된다. 현재 학술지에 보고되고 있는 실험이나 이론 논문 중에는 이미 밝혀져 있는 과학적 이론들의 적용 한계를 밝히기 위한 것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라. 발명적 탐구 과정
새로운 과학 지식을 발견하기 위한 탐구와 전혀 다른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탐구도 있다. 새로운 분자를 합성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탐구가 그런 경우가 된다. 이 경우에는 탐구의 목표부터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흔히 '발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런 창작적 탐구는 자연적 또는 인공적 환경에서 관찰되는 현상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대상을 만들어내려는 창작 의욕이 그 동기가 된다. 따라서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과학적 탐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용성'(경제성)에 대한 고려가 문제 인식의 핵심이 된다. 쓸모가 없는 물질이나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탐구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의 탐구 과정에는 또 다른 특성이 있다. 일반적인 과학적 탐구에서는 모든 가설과 실험이 이미 확인된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만 설득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창작을 위한 탐구에서는 아직까지 설명되지 않은 경험적 지식도 중요하게 활용된다. 창작적 탐구의 성공은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설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만들어진 물질이나 기술의 유용성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의 기술은 대부분 과학적으로 확인된 지식이 아니라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되었다. 그런 전통은 아직도 첨단 기술 개발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미국의 우주 왕복선에 사용하는 세라믹 단열재는 완벽한 과학적 근거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경험적인 기술에 의해 개발된 것이다. 기계 제작에 사용하는 금속 소재의 가공이나 화약 생산에서도 그런 전통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마. 과학적 탐구의 교육
과학적 탐구의 핵심은 문제 인식 능력과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자연에서 관찰되는 현상들은 매우 복잡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과학적인 설명이 필요한 문제를 파악하는 정도(正道)가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물질이나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발명적(창작적) 탐구의 경우에도 유용한 대상을 파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많은 경우에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탐구의 성공을 보장하는 길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인식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매우 다양하다.
과학적으로 중요한 탐구의 성공 사례는 그런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아인슈타인은 어느 날 머리 속에서 "우지끈"하는 느낌이 느껴지면서 특수 상대성 이론이 떠올랐다고 했다. 과학적 탐구의 성공은 정형화된 탐구의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의 설명하기 어려운 통찰력에 더 많이 의존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다른 사람의 탐구 과정을 흉내내는 것으로는 평범한 탐구자를 양성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진정한 의미의 과학자는 길러내기 어렵다는 뜻이다.
더욱이 탐구의 과정은 문제에 따라 크게 다르기 때문에 어떤 탐구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다른 탐구에서도 성공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가 없다. 다만 성공의 확률이 조금 높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성공적인 탐구의 방법을 몸에 익힌 유능한 과학자가 되는 것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적 탐구를 몸에 익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탐구의 경험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다른 과학자와 함께 탐구 활동을 경험하는 것이다. 과학자의 양성이 전통적으로 효율성이 낮아서 시간과 비용이 많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봉건 시대의 도제(徒弟) 제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오늘날 현대적 교육 체제에서도 탐구를 중심으로 하는 연구 방법을 교육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연구 활동에 직접 참여해서 다른 과학자의 탐구 활동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교육의 경우에도 진정한 의미의 과학자를 길러내는 성공 확률은 대단히 낮은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부분의 자연계 대학원의 교육은 그런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과학적 탐구는 문학이나 예술의 창작 활동과 비슷한 특성도 가지고 있다. 과학적 탐구가 기본적으로 개인의 창의력과 정교한 실험 능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개인적인 활동이라는 것이다. 물론 물리학이나 응용과학의 대형 연구 과제의 경우처럼 많은 연구자들의 협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탐구 활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에도 탐구를 주도하는 극소수의 과학자가 탐구의 전체 과정을 총괄하게 된다. 탐구가 근본적으로 개인적인 활동이 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과학적 현상을 밝혀 내거나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사회적 합의에 의해 민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고 해서 자연이 그런 결정에 따르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2. 탐구 활동 중심의 과학 교육
미국에서 시작된 탐구 활동 중심의 과학 교육은 근본적으로 교사가 아니라 '학생'이 중심이 되는 과학 교육을 의미한다. 학생들이 새로운 지식을 찾아내거나 기술을 개발하는 '과학자의 입장'에서 과학적 사고력이나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탐구 중심의 교육에서는 학생들이 탐구의 과정에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만들어야 하고, 학생들 사이의 자발적인 상호 작용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통해 보다 의미 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 탐구 중심 교육의 이론적 배경
탐구 중심의 과학 교육의 구체적인 방법론은 대부분 학생들이 과학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 동화와 조절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구성주의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장 피아제의 인지 발달 이론을 근거로 하고 있다. 즉 학생들의 인지 능력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상황을 이해하는 동화의 단계에서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조절 과정을 거치면서 발달되고, 그런 과정에는 타고난 유전적 기질은 물론이고 물리적인 경험과 사회적 상호 작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탐구 중심의 과학 교육은 학생들에게 물리적 경험과 사회적 상호 작용의 기회를 적절하게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이 인지 능력을 발달시키려는 것이다.
탐구 중심의 과학 교육에서는 학생 중심의 탐색 단계를 거쳐서, 교사가 가르쳐준 용어를 내면화하는 적용 단계를 거치도록 유도한다. 그런 수업에는 실험, 강연, 읽기, 토론, 수업 등의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 교육에서는 실험이 압도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탐구 활동 중심의 교육에서는 교사가 중심이 되어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고도로 구조화된 연역적인 '확인' 실험보다는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고안된 귀납적이거나 가설 연역적 '탐구' 실험이 더 효율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학생들이 긴밀한 상호 작용을 바탕으로 과학적 탐구의 모든 과정을 경험하도록 함으로써 과학적 지식의 학습 효과를 극대화시켜서 궁극적으로 학생들을 사고력의 가장 성숙된 단계인 가설 연역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단계로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나. 탐구 중심 학습의 문제점
중등학교의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충분한 과학 지식과 탐구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다. 현재 과학 교과서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탐구 활동에서는 학생들에게 탐구 활동의 목표와 구체적인 탐구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고 있다. 탐구 활동을 지도하는 교사는 학생들이 먼저 질문을 제시하고 시범 실험을 보여주거나 학생들의 실험을 도와주고, 학생들은 시범 실험을 관찰한 후에 직접 실험을 수행하여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하고 결과를 정리한다. 그 후에 탐구와 관련된 과학 용어를 설명한 후에 토론, 응용 문제 풀이, 또는 다른 실험을 통해서 학습한 개념을 다른 현상에 응용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적절한 교육 과정과 환경이 마련되어 있고,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과학에 대해 충분한 관심과 의욕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탐구 활동 중심의 과학 교육이 바람직할 수 있다. 학생들은 직접 체험을 통해서 개념과 법칙을 더욱 정확하고,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 사이의 상호 작용을 중심으로 하는 학습은 학생들 눈높이에 맞는 의견 교환을 통해서 학습의 효과를 증진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단답형이 아닌 서술식 문제도 학생들의 사고의 폭을 확대시켜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학생들은 실험 중심의 과학 교육을 통해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 능력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충분한 준비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다른 나라의 유행을 따라 무리하게 추진하는 무리한 탐구 활동 중심의 과학 교육이 심한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도 있다. 충분한 수업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학급당 학생의 수가 많을 경우에는 탐구 학습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과 상호 작용을 보장하지 못하게 되어 탐구 활동 전체가 형식적인 활동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탐구 활동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교과서에 소개되는 모든 개념과 법칙을 탐구를 통해 학습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그런 뜻에서 제7차 교육과정에서 처음 도입된 심화 과정의 경우에는 교과서의 대부분이 탐구 활동으로 채워진 것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탐구 중심의 과학 교육이 가지고 있는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학생들에게 구체적인 목표와 과정을 제시해주는 탐구 활동이 자칫 과학적 탐구 활동 자체를 정형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학생들이 제시된 탐구 과정을 따라야 한다면 그 자체가 학생들이 사고의 폭을 제한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되어 버린다. 과거에 중요한 개념이나 법칙을 처음 찾아낸 과학자의 탐구 과정을 반복해보는 것도 의미가 없다. 관련된 과학적 개념이나 법칙이 충분하지 않았던 당시의 과학자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었던 탐구가 오늘날의 과학적 상식으로는 자명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과학은 지난날의 일을 되짚어보는 역사가 아니다. 과학자의 옛날 이야기는 과학사(科學史)의 입장에서는 중요하겠지만, 현재의 과학을 배워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공연한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탐구 중심의 과학 교육에서 학생들 사이의 상호 작용을 강조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학생들이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은 사회 구성주의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교육시키는 과학 지식은 구성주의적 특성이 없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다. 학생들의 상호 작용에 의한 합의로 그 내용이 바뀌어질 수 없다는 뜻이다. 탐구의 결과를 직접적인 실험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는 경우에는 학생들의 잘못된 합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토론이나 읽기 자료를 이용하는 탐구 활동의 경우에는 학생들의 상호 작용의 결과로 자칫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교사가 학생들이 상호 작용 과정을 충분히 관찰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학생들 사이의 상호 작용 과정에서 잘못된 오개념을 습득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더욱이 탐구 활동에서 학생들 사이의 상호 작용을 강조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개인적인 활동의 특성이 강한 과학적 탐구의 본질을 훼손해서 과학 지식이 사회적 합의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과학 실험에도 나름대로의 재능과 적성이 필요하다. 악기를 다루고 그림을 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낯선 시약과 기구를 다루는 일이 모든 학생들에게 흥미로운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런 재능과 적성을 가지고 있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실험을 요구하는 탐구 중심의 과학 시간에 적응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결국 탐구 중심의 과학 교육은 처음부터 과학에 필요한 재능과 적성을 가진 학생들만을 위한 교육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탐구 중심의 과학 교육이 교육학적으로 바람직할 수는 있다. 그러나 탐구 중심의 과학 교육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무엇보다도 충분한 교사와 수업 시간과 실험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교육 과정과 교육 방법도 합리적으로 마련되어야 하고, 교사들에 대한 충분한 교육도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인의 재능과 능력에 의해 발전하는 과학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문화적 배경도 마련되어야 한다. 물론 탐구 활동에 관심을 갖지 못한 학생들에 대한 충분한 배려도 필요하다.
IV. 과학 교육에서의 창의력
우리 과학 교육과정에서 '창의력'을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1987년부터 시행된 제5차 교육과정부터였다.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1992년부터 시행된 제6차 교육과정에서는 '창의적인 사람'이라는 인간상을 추구하기도 했다. 모든 과학적 탐구에서 '창의력'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창의력이 배제된 과학적 탐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창의력이 과학에서만 필요한 것도 아니고, 과학을 통해서만 창의력을 기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뜻에서 과학 교육에서 창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1. 창의력의 의미
국어 사전에 따르면 창의성(創意性)은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능력'을 뜻한다. '만들다'는 의미의 라틴어 'Creo'를 어근으로 하는 'Creatio'에서 유래된 영어의 creativity도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상상력을 이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뜻한다. 그러나 학문적인 시각에서 창의성은 매우 어렵고 복잡하고 다면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다양한 시각의 정의가 제시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창의성은 사회의 전통과 문화적 구속에서 벗어나 개성적이고 독립적인 사고(思考)에 의해 새롭고 신기한 결과물이나 의견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인지적 능력을 뜻한다. 그런 창의성은 사회적으로 그 독창성을 인정받게 되는 사회적 수준의 창의성과, 사회적으로는 독창적인 것으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개인에게는 새롭고 독창적일 수 있는 개인적 수준에서의 창의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테일러(1988)는 창의성을 다섯 가지로 구분하기도 했다. 예술, 문화, 학문, 사상 등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창발적 창의성'(emergent creativity), 개념적 기술과 관련된 개량과 수정을 통한 진보의 원동력이 되는 '혁신적 창의성'(innovative creativity),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의 발명을 실현시켜주는 '발명적 창의성'(inventive creativity), 과학이나 예술적 산물을 만들어내는 '생산적 창의성'(productive creativity), 그리고 자신의 내면적 감정을 표출하도록 해주는 '표현적 창의성'(expressive creativity)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창의성의 정체에 대한 인식도 다양하다. 슈텐버그(1999)에 따르면 창의성은 신(神)에게 부여받은 영감을 표출하는 능력(신비주의적 인식), 성적(性的) 욕망, 부(富), 권력, 명예 등의 무의식적 소망을 사회적으로 안전하게 표출하는 능력(정신분석학적 인식), 자극에 대한 학습된 반응(행동주의적 인식), 일종의 뇌기능(인체해부학적 인식), 기존의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인지 과정으로 학습될 수 있는 능력(인지적 접근) 등으로 다양하게 볼 수 있다. 개인의 내적 동기, 지식과 능력, 사고와 수행 기술의 혼합체라고 보는 통합적 인식도 있다.
창의성에 대한 지극히 실용주의적인 인식도 있다. 흔히 산업 현장에서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강조하고 있는 다양한 창의성 향상 모형들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창의력과 관련된 기본 능력으로 민감성, 유창함, 독창성, 융통성, 종합능력, 분석능력, 복잡성, 평가능력, 또는 정교성 등이 있다. 대담성, 용기, 자유, 자발성 등의 잠재력 등을 통해 개인의 잠재력이 실현된다는 이론도 있다.
창의성이 무엇이고, 어떻게 인식하는가와 상관없이 진정한 창의성과 방종(放縱)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전통과 문화적 구속에서 벗어난 기발한 발상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것이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런 발상은 책임과 의무를 무시한 방종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의성에 대한 학문적 정의에서는 빠짐없이 '새로움'이나 '신기함'과 함께 '유용성'과 '적절성'이 등장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유용하고 적절하지 않은 창의성은 결코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2. 과학적 창의력
과학적 창의력은 물론 과학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창의력을 말한다. 관찰된 현상으로부터 문제를 인식하거나, 기존의 경험에서 필요한 기술을 인식하는 것부터 창의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복잡하기 마련인 자연 현상에서 정말 설명이 필요한 문제가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일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명료하게 다듬어서 단순화하는 작업도 필요하고, 본래의 문제에 앞서서 우선 해결해야 할 하위의 문제를 파악하는 일도 그렇다. 관찰된 현상을 보는 시각에 따라서 해결될 가능성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용적이고 경제적 가치가 높은 새로운 기술을 찾아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보아 넘기는 경험에서 문제점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남다른 창의성을 요구한다.
인식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모든 과정에서도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사고 능력이 요구된다. 그런 능력은 가설을 설정하고, 실험을 설계하는 과정은 물론이고 실험 결과를 해석하는 과정에서도 꼭 필요하다. 이미 밝혀진 과학 지식이나 기술을 적절하게 응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결국 과학적 탐구의 모든 과정은 탐구자의 창의적 능력에 의해 그 성패가 결정된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다른 분야의 창의력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창의력에도 과학기술계의 일반적인 관행이나 제약에서 벗어난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사고 방식이 필요하다. 단순히 다른 사람이 밝혀놓은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과학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밝혀놓은 결과를 확인하기 위한 연역적 탐구의 경우에도 창의력이 요구된다. 과학 연구의 현장에서 필요한 연역적 탐구는 다른 사람의 탐구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확인한 결과를 독립적인 방법으로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탐구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탐구 결과를 인정하거나 부정할 수 있어야만 학술적으로 가치가 있는 탐구가 된다. 따라서 그런 탐구에서는 문제의 인식과 가설 설정은 동일하더라도 실험을 설계하고 수행하는 과정은 창의적이어야만 한다.
다만 과학적 창의성은 이미 확인된 과학 지식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과학적 탐구 방법에 대한 충분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다른 분야의 창의성과 크게 구별된다. 또한 문제를 분석적이고 비판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예를 들어서, 문학, 음악, 미술 분야의 창의성에서는 사회적으로 마련되어 있는 틀을 반드시 지켜야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기존의 사회적 구속 조건을 과감하게 무시할수록 더욱 창의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술적 창의력의 가치를 규정하는 사회적 제약 조건들이 그런 작품의 출현에 의해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적 탐구의 결과는 사회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는 있어도, 이미 확인된 진정한 과학 지식을 부정하게 만드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과학적 창의성에서 요구되는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사고 방식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은 기존의 학설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현상에서 과거에는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부분을 개척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물리학에서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 통계 역학의 출현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으로 고전 역학을 완전히 부정된 것이 아니다. 다만 기존의 고전 역학으로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던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진 미시의 세계를 비롯한 물리학의 새로운 영역이 밝혀졌을 뿐이다. 물론 과거의 고전적인 생물학의 경우처럼 철저한 과학적 분석보다는 자연 현상에 대한 서술적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던 분야의 경우에는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에 의해 기존의 과학 지식이 대폭 손질된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과학적 창의력이 다른 분야의 창의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과학적 창의력이 요구하는 개인의 품성이나 개성이 다른 분야의 창의력에 영향을 주는 요인과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의적인 과학자가 반드시 훌륭한 예술가나 문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21세기 지식 기반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개인의 창의성이 반드시 과학적 창의성인가에 대해서는 심각한 고려가 필요하다. 근본적으로 과학적 창의성은 과학자와 공학자에게만 요구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과학 교육에서의 창의력
과학 교육에서 창의력 향상을 위해 강조되는 것은 서술형 답을 요구하는 '열린 문제'(open question)와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다. 단답형으로 정해진 답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까지를 포함하는 서술식 답을 요구하고, 교사의 설명이 아니라 학생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학생들 사이의 상호 작용(협력)을 통해서 학생들의 사고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암기에 의존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객관식 문제나 단답형 문제가 학생들의 사고를 획일화시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교육을 통해서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사고 능력을 갖추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서술식 답과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열린 문제가 반드시 학생들의 창의력을 향상시켜 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현재 우리 교과서의 경우처럼 해결해야 할 목표와 탐구의 과정까지 자세하게 제시해주는 탐구형 열린 문제의 경우에는 학생들의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또 다른 형식으로 학생들의 사고를 정형화할 가능성이 있다.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 요구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의 상호 작용이 자칫 발표력이 떨어지는 학생에게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열린 문제와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가 반드시 학생들의 창의력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열린 문제와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교사의 일방적인 수업보다는 학생들에게 보다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수업의 효율은 교사의 일방적인 수업보다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우리의 경우처럼 중등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내용을 획일적으로 규정해놓은 교육 과정에서는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효율이 낮은 탐구 중심의 과학 교육의 효과를 심각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한편 진정한 과학적 창의력은 추상적이고 어려운 과학 개념과 법칙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 현대 과학의 개념이나 법칙들 중에는 중등학교 과정의 탐구 활동으로는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탐구 활동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과정에서 그런 개념이 제외되어 버리면 오히려 학생들의 창의력 향상에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또한 아무리 탐구의 과정을 많이 경험하더라도 과학적 지식이 충분히 갖추지 못한 학생은 결국 진정한 과학적 창의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
모든 학생들이 과학적 창의력에 관심을 갖는 것도 아니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에 고통을 느끼는 학생들도 있다. 중등학교의 음악 시간에 모든 학생들에게 창의적인 작곡을 해보도록 요구하지도 않는다. 모든 학생들이 문학적, 예술적 창의력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일반적인 중등 교육을 통해서 그런 능력을 쉽게 길러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적 창의력도 다른 분야의 창의력과 마찬가지로 쉽게 길러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학생들에게 요구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과학 교육이 창의력 향상에 특별히 유용한 것이라는 근거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창의력 향상이 과학 교육의 핵심 목표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는 셈이다.
V. 교육과정의 개선 방향
어렵게 마련했던 제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면서부터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것은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해주고,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고, 과학의 실용성을 강조한다는 총론적 목표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행 단계에서는 몇 가지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지식 기반 사회 구축의 핵심이 되는 효율적인 과학 교육을 위해 제7차 교육 과정의 개선에 필요한 몇 가지 사항들을 제시해본다.
1. 독자적인 과학 교육 방법과 목표
1954년에 시행되었던 제1차 교육과정은 처음으로 '우리 실정'에 알맞은 교육 과정의 체계와 기틀을 마련한 계기였다. 1963년의 제2차 교육과정에서는 국가 과학 기술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과학의 기초적인 내용을 정선했다. 그런 교육 과정이 외국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73년에 시행되었던 제3차 교육과정부터였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미국의 교육 개혁 사상의 영향을 받아 학문 중심 또는 탐구 중심의 과학 교육 이념을 받아들였다. 1981년의 제4차 교육과정에서는 오히려 학문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서 실용성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1987년의 제5차 교육과정에서는 1980년대부터 미국에서 유행하던 '모든 이를 위한 과학'(science for all)이라는 기치 아래 과학 기술 사회(STS)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1992년의 제6차 교육과정에서는 생활인으로서 필요한 과학적 탐구 활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1998년에 시작된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역시 '조금 가르치는 것이 좋다'(less is more)는 미국의 유행을 받아들였다. 결국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의 과학 교육은 주로 미국의 교육 사조에 심각한 영향을 받아왔던 셈이다.
가. 독자적인 교육 방법
우리가 외국의 과학 교육 동향을 민감하게 받아들인 명분은 다음과 같다. "과학은 내용의 성격상 인문 과학이나 사회 과학과는 달리, 한 국가에서 성공한 과학 교육이 다른 국가의 과학 교육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실제로 과학 교과의 내용은 지역이나 국가, 민족 또는 시대에 따른 차이가 비교적 적은 교과 중의 하나다." ([고등학교 교육과정 해설, 6. 과학], 교육부, 2001)
객관적, 보편적, 가치중립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과학 지식을 가르치는 과학 교육의 내용이 지역이나 국가, 민족과 시대에 따른 차이가 비교적 적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치나 스탈린 시대에 지역적으로 잘못된 우생학이 유행을 했던 경우를 제외하면 현대의 과학적 내용이 지역이나 국가 또는 민족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듯이 과학의 교육 내용이 시대에 따라 거의 변화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정확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 생명과학과 정보기술의 발달은 과학의 교과 내용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 내용이 같다고 해서 교육 방법까지도 외국의 것을 모방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국가나 사회에 따라서 과학 교육을 통해서 달성하려고 하는 목표가 다를 수 있고, 교사, 학생, 국민들의 과학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크게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교육 방법이 학교나 지역에 따라 그 효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 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그 사회 또는 집단의 문화적,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 그 효과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에서 매우 성공적인 교육 방법이 우리 사회에서는 완전히 실패한다 해도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가 탐구 중심의 과학 교육을 처음 도입했던 제3차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의 탐구 능력이나 창의력이 뚜렷하게 향상되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더욱이 오늘날 대학에 입학하는 이공계 학생들의 경우에도 충분한 탐구 능력이나 창의성을 갖춘 학생들을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교육 환경이 미국과 크게 다르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탐구 활동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수는 물론이고 교사와 실험 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미국에서의 탐구 중심 교육이 교육 환경이 전혀 다른 우리 사회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현대의 과학이 통합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서 갑자기 시행했던 통합 교과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런 과목을 효율적으로 가르칠 교과서와 교사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학 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수용 태도도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현대 과학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매우 낮고, 무리한 기술 도입에 의한 사회적 갈등이 심각한 우리 사회에서 학생들이 과학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 학생들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언론과 광고가 엉터리 과학 상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의 경우에는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습득하게 되는 잘못된 과학 지식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적극적인 노력이 포함된 교육 방법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강조되고 있는 과학 기술 사회(STS)의 성급한 도입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선진국에서 현대 과학과 기술에 대해 이미 사회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공감대를 유지하기 위한 STS 교육은 그런 공감대가 마련되어 있지 못한 우리 사회에는 적절하지 못하다. 과학자가 하는 일을 소개하는 수준의 STS 교육이라면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과학 교육의 시간을 낭비하는 요인이 될 뿐이다.
나. 과학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과학 교육과 현대 민주 사회가 요구하는 유능한 민주 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과학 교육은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전문가 양성을 위한 과학 교육에서는 높은 수준의 과학적 개념과 법칙에 대한 강도 높은 교육이 필요하고 실험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학생들의 과학적 창의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효율적인 교육도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과학자 양성을 위한 중등 과학 교육은 이공계 대학에서의 전문가 양성 교육과 충분한 연계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외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AP 제도처럼 뛰어난 학습 성과를 보이는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그러나 민주 시민을 위한 과학 교육이라면 일상 생활에서 직접 활용할 수 있는 과학 상식을 중심으로 하는 과학 교육이 필요하다.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게 되는 제품 구입에 필요한 과학 상식도 필요하고, 우리 사회가 새로 도입하게 되는 기술의 정체를 스스로 파악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학 상식도 제공해주어야 한다.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 못한 학생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도 있는 탐구 활동이나 창의력 향상을 위한 학습 활동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재나 현상을 통해서 과학 지식을 찾아내도록 유도하는 것보다는 기본적인 과학 상식을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교육시키는 방향이 더 바람직하다.
탐구 활동을 통한 창의력 향상을 기본적인 목표로 하고 있는 제7차 과학 교과 교육 과정은 과학자 양성을 위한 교육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민주 시민 양성을 위한 과학 교육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과학자 양성을 위한 교육이라고 하기에는 학습 내용이 너무 초보적이고, 학습량도 턱없이 부족하다.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해주는 것도 과학자 양성을 위한 교육에는 적절하지 않다. 제7차 교육과정의 교육을 받은 학생들 중에서 이공계로 진학한 학생들의 수학 능력에 대한 의문에 제기되고 있는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제7차 과학 교과 교육과정은 민주 시민에게 필요한 과학 상식과 비판적이고 과학적인 사고 방식을 제대로 교육시키지도 못하고 있다. 현대 과학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시키지도 못하고 있고, 실용성을 강조하는 교육 목표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잘못된 과학 상식과 온갖 신비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과학 교육이 지식 기반 사회가 요구하는 충분한 과학 상식을 갖춘 인력을 양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 통합적 특성이 강화되고 있는 현대 과학의 특성을 고려해서 학생들에게 과목에 대한 선택권을 줄 것이 아니라,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모두를 필수로 가르쳐야만 한다. 다만 각 과목별 비중은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2. 충분한 교육 여건 확보
제7차 교육과정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과학 교과의 수업 시수를 대폭 감축해버린 것이다. 심지어 학생들이 쉬운 과목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회 교과보다도 더 적은 시수를 할당한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합리화시킬 수 없는 심각한 문제다. 더욱이 오늘날에는 국민들의 과학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국가 사회의 생존과 번영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어 버렸다. 이미 시작된 지식 기반 사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과학 지식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중등학교의 교육 과정에서도 그런 사실은 분명하게 반영되어야만 한다. 과학 교과의 수업 시수 확대 요청을 과학 교육계의 이기주의로 몰아붙이는 태도는 매우 심각한 것이다.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해주는 것도 과학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실수다. 오히려 오늘날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중등학교의 과학 교육에서는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모두를 필수로 가르쳐야만 한다. 분야별 통합이 특별히 강조되고 있는 현실에서 분야의 성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해주는 것은 정상적인 교육을 포기해버리는 자세라고 볼 수밖에 없다.
탐구 활동 중심의 과학 교육을 효율적으로 실시하려면 교과서와 교사 지침서는 물론이고, 교사들의 양성과 재교육 프로그램도 그에 맞도록 대폭 개선되어야만 한다. 탐구 활동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 3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탐구 활동에 필요한 교재와 교사 양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과학교육계의 지적은 이미 정당성을 상실해버렸다. 이제는 탐구 활동 중심의 과학 교육에 대한 막연한 집착에 대해 집중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과연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탐구 중심의 과학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서 정량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그런 분석을 기반으로 하는 합리적이고 독자적인 교육 방법을 개발해야 하고, 그런 교육을 효율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교사 양성 프로그램과 기타 교육 여건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3. 합리적인 교육 내용
제7차 교육과정에서 채택한 '적게 가르치는 것이 좋다'(Less is more)는 교육 철학은 충분한 교육 기회와 환경이 제공되었을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처럼 절대적인 수업 시수가 모자라고, 과밀 학급조차 해소하지 못하는 열악한 교육 환경에서 그런 교육 철학은 수업 시수 감축을 정당화시키려는 핑계에 불과하다.
과학 교과의 교육 내용은 지난 50여 년에 걸쳐 7차례나 개정되면서 정작 수정되어야 할 내용은 그대로 남아있고, 새로 더해져야 할 교육 내용은 더해지지 않은 기형으로 발전해버렸다. 그런 문제는 화학의 경우에 더욱 심각하다. 초등학교에서는 아직도 흰색 고체 분말의 확인과 분리가 가장 중요한 교육 내용으로 남아있다. 중등학교의 교육에서도 과학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인 보어 모형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보어 보형은 원자를 구성하고 있는 전자의 에너지가 양자화되어있다는 가설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고전역학적 모형으로, 여러 개의 전자를 가지고 있는 원자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못하는 역사적 모형이다. 그런 모형이 너무 강조되어서 원자 오비탈의 껍질 모형을 보어 모형이라고 잘못 가르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화학에서 취급하는 열역학의 경우도 문제가 심각하다. 물리적, 화학적 변화에서 나타나는 반응열의 종류를 가르치는 일에 너무 열중하고 있다. 중등화학에서 취급하는 반응열의 종류는 녹음열, 기화열, 용해열, 연소열, 중화열 등을 비롯해서 그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다. 중등화학의 열역학은 반응열의 종류를 가르치는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정도다.
정작 화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화학 평형은 열역학이 아니라 반응속도론으로 밀려나 버렸다. 결과적으로 중등화학에서 많이 취급하는 평형 상수는 마치 이론적 배경은 없고 경험적으로만 얻어지는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화학 평형과 밀접하게 관련된 총괄성(어는점 내림, 끓는점 오름, 삼투압, 증기압 내림)도 경험 법칙으로만 교육시킬 수 있을 뿐이다. 화학 평형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엔트로피의 개념은 중등화학에서는 전혀 소개하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은 그런 개념을 영어 교과서의 지문을 통해서 배우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VI. 맺음말
제7차 과학 교과 교육과정은 이제라도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대폭 감소된 수업 시수를 확충해야만 한다. 충분한 수업 시수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과학 교육은 사회가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는 지식 기반 사회를 이끌어갈 유능한 민주 시민 양성에 기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학생들에게 주어진 과목의 선택권은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오늘날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중 그 어느 것도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모든 학생들에게 모든 과학을 가르쳐야만 한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은 더 이상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만을 가르치는 것은 교육이라고 할 수가 없다. 본래부터 학생들이 좋아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가 필요하다고 합의하는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교육의 효율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수준별 교육은 교육 환경의 획기적인 개선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수준별 교육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충분한 수의 교사와 교육 시설을 확보해야만 한다.
우리가 과학 교육을 통해서 달성하려는 궁극적인 목표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전문 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 민주 사회의 유능한 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은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21세기 지식 기반 사회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과학 상식과 비판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결국 우리 사회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지속적인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유능한 민주 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과학 교육을 특별히 강화해야 한다. 그런 교육에셔는 탐구 활동이 중심이 될 필요도 없고, 무리하게 창의성을 강조할 필요도 없다. 과학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학적 개념과 법칙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런 지식을 일상 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할 뿐이다. 또한 인류 문명의 핵심인 자연과학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확실한 이해도 필요하다. 불필요한 탐구 활동과 창의력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많은 학생들이 과학을 외면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이공계 대학으로 진학해서 전문 과학자로 성장할 학생들에 대한 심화 교육은 수준별 교육을 활용하거나, 과학고등학교와 같은 전문 교육 기관을 활용할 수도 있다.
우리의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알맞은 우리 나름대로의 과학 교육 방법도 서둘러 개발해야 한다. 과학 지식 자체는 객관적이고 가치 중립적이고 보편적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지식을 학습시키는 교육은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따라 달라져야만 한다. 선진국에서 성공한 과학 교육 방법이 우리 사회에서도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안타깝지만 우리 사회의 과학에 대한 이해의 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다. 그런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탐구 활동과 창의력 향상을 위한 노력이 기대했던 성과를 가져오지 못할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효율적인 과학 교육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충분한 능력과 창의적인 사고 방식을 갖춘 교사의 양성이다. 젊은 교사의 양성도 중요하고, 현재 교직에 종사하고 있는 교사들에 대한 지속적인 재교육도 필요하다. 과학 지식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과학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인식시켜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21세기의 과학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는 틀에 박힌 탐구 활동을 이끌어 가는 수동적인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새로운 학습 방법을 고안해내어 실천할 수 있는 창의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과학 교육에서의 창의력은 학생들이 아니라 교사들에게 요구되어야만 한다. 교사들의 창의력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교사들에 대한 무리한 행정적 간섭이 사라져야 한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교사와 학생 사이의 지극히 개인적인 상호 작용에 의해서 그 효율이 크게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런 교육을 정형화하려는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유능하고 창의적인 교사들을 찾아내어 용기를 주어야 한다. 다양성을 가장 존중해주어야 할 분야가 바로 교육이고, 교육의 다양성은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교사에 의해서 이룩될 수 있다.
이 글은 교육용으로 사용해도 좋으나 출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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